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우리는 ‘사랑하다’의 관념을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정작 사랑받는 기분이 무엇인지는 알아내려 하지 않는다.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받는 기분은, 누가 주어야 마침내 알 수 있다. 받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어떻게 받아내지?
좀 전에 EBS 다큐프라임의 부모님 칭찬 프로젝트 편을 봤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이 부모님께 칭찬하고 칭찬 일기를 적는 프로젝트를 한다. 일주일에 최소 3번, 50일 간의 칭찬. 칭찬은 세심한 관찰을 통해,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한다. 부모님에겐 이 모든 것이 비밀이다.
프로젝트 초반, 칭찬을 들은 부모님들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대답을 하지 않거나, “어”, “그래”라며 무뚝뚝하게 답하거나, “갑자기?”, “너 왜 그래?”라며 어색하게 반응한다.
어른들은 칭찬받을 일이 점점 줄어든다. 받을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받았을 때의 기분을 느낄 일도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칭찬해 주는 입장에 있던 부모님들은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자 어쩔 줄을 모른다. 머쓱하고 얼떨떨해서 그냥 무마해 버린다. 아이들은 그런 반응에 속상해하고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들은 칭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수업의 일환이자 프로젝트라는 명분이 있기에, 아이들은 하기 싫어도 한다.
5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어색해하던 부모님은 점차 칭찬을 받아들인다. 정말? 고마워. 또는, 너도야. 너도 이런 것을 잘하잖아. 받은 칭찬은 다시, 주는 칭찬이 된다.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쓴다. 뭐든지 잘하는 아이.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 많이 도와주는 사람.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도움을 주는 사람.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깨달음, 그것은 칭찬을 주어서 알게 된 것이다. 50일이라는 시간 동안 주고, 또 받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받아내냐 하면, 줌으로써 받는다.
|
|
|
“저 사랑받나 봐요.”
친구가 한동안 참여 중인 서점 북클럽을 하루 빠진 날, 북클럽의 다른 회원들에게 연락이 왔단다. 그들은 그녀를 찾고 그녀를 궁금해 한다. 친구는 연락을 받고 서점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저 사랑받나 봐요!
사랑. 나는 그 아이가 사람들에게 많이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주지 않는 사람은 충분히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없다. 그래, 사랑을. 사랑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참 많은 ‘실체’를 들여 사랑이란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내가 주는 사랑도, 내가 받는 사랑도 눈에 띄기를 바란다. 실체는 쉽다. 돈을 들이고 물건을 전달해 보여주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어떨 때는 매우 필요하고 요구되며, 빠르고 강력하다. 그래서 가끔은 착각하는 듯하다. 이것이 전부라고, 그렇게 착각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진정으로 얻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정도(正道)다. 시간을 들인다. 말들이 쌓이고 행동이 쌓인다. 사소한 웃음과 정갈한 손길이 쌓인다. 우리는 기쁘게 응원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상대에게 어떠한 바람도 없이 같이 어울린다. 그저 지금 이 시간을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는 듯이. 기꺼이 내준 몇 시간은 점점 불어나 일주일 치, 한 달 치, 일 년 치, 끝도 없이 쌓인다.
얼마짜리를 받으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양껏 받았다고 할까. 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되돌아오지도 않고, 내 손으로 더 벌자고 해서 벌 수도 없는 것. 운이 좋다고 해서 얻어지지도 않고, 운이 나쁘다고 해서 잃어지지도 않는 것.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값. 시간을 내어줄수록 사랑을 받고 사랑을 받을수록 시간을 내어준다. 사랑을 줄수록 시간을 얻고 시간을 얻을수록 사랑을 준다. 그것이 사랑과 시간의 역학이니까.
나는 그 아이가 많이도 건넸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양을 한껏 쪼개, 흔쾌히 그 시간을 나누었을 것이다.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가장 값비싸게.
|
|
|
☀︎ PEOPLE: 자기 일에 시간을 쌓은 사람들
☀︎ ☀︎ 정일영 & 김성진 |
|
|
☼ 유튜브 침착맨 방송에 프랑스어 선생님으로 출연해 거침 없는 입담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30여년간 시간강사로 일해왔고 최근에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 |
☼ 유튜브에 영문법 강의를 올리는 김성진 선생님. 1000개가 넘는 강의 영상을 업로드해왔다. 여느 때와 같은 어느 날의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며, 대중과 학습자들이 유입되는 중. |
|
|
⌁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일에도 시간이 쌓입니다. 언젠가 친구는 저에게,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건 출퇴근한다고 하여 경력이 되지 않는 일이므로 스스로 결과물을 무조건 생산해 냄으로써 경력이 되는 제 일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의 일기에는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 되는 기분인 게 너무 개같다. 우아하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게걸스러워진다."라고 썼습니다.
나의 시간이 10년, 20년, 30년 똑같으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똑같은' 상태를 걱정하고 있을까요. 똑같으면 안 되나? 근데 안 되나 봐요. 생활이 안 돼요. 거창한 걸 바란 적이 없는데, 거창해져야 하는 것 같아서요. (유명하길 바라지 않음 → 근데 조금이라도 유명해야 돈이 벌림 → 딜레마 발생 →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알려지길 바라게 됨 → 근데 바라지 않아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함.) ...이걸 부수고 '오케이. 유명해지기를 바라기를 인정하기를 인정할게'를 외쳐서 이른바 3단계 힙스터에 준하는 경지에 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이 두 단어로 일종의 특수 목적 안경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마다, 그 안경을 꺼내 쓰고 여러분 자신의 삶을 작가이자 역사학자로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크로노스는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카이로스는 적절한 순간, 결정적인 기회, 신학적으로는 '정해진 특별한 때'를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수많은 카이로이(카이로스의 복수형)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 측정 가능한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 의미와 기회의 시간이죠. (...) 소설에서 주인공은 카이로스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작가라면 독자보다 먼저 주인공을 완전히 변화시킬 결정적인 순간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여러분이 이야기의 주인공일 때는 어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인지 항상 명확히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시간의 관점을 보여주는 특수 안경으로 제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주 고통스럽게 느껴졌거나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조차 사실은 카이로이였습니다."
☼
"오히려 카이로스의 순간들은 저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제 의지와 계획과는 상관없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제가 할 일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 해낼 것이라 기대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요구를 처리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계속 배우고, 자신의 몫을 계속 해내가며, 그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카이로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가로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합니다."
☼
"시간은 적이 아닙니다. 시간은 친구입니다. 현실이 된 모든 꿈은 결국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지기 마련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우리가 그 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정직하게 분투해야 할 때입니다. (...) 시간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시간의 이중 초점 안경을 쓰게 된다면, 여러분은 혼란의 안개와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말들, 그리고 불안을 부추기는 혼돈을 꿰뚫어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때로 급박함으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침착하고, 현명하고, 냉철하며,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
|
|
⌁ 데뷔 소설을 쓰기까지 12년이 걸렸고, 베스트셀러인 <파친코>를 쓰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이 더 걸렸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집필 중인 세 번째 소설이 완성할 때가 되면 10년 후인 58세가 되어 있을 거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모교인 예일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시간의 개념인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통해 인생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개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도 시간이 무서운 것이 아니기를. 시간을 버티기가 아니라 시간을 디디며 살아가기를.
|
|
|
☼
아이즈매거진의 질문: 김창완에게 행복이란?
"미끼를 던져서 행복을 낚으려고 하지 마세요. 행복은 미끼를 물지 않습니다. 행복은 어쩌면 시간하고 동의어일지도 몰라요." |
|
|
☀︎
당신이 사냥한 오늘의 햇빛이 있나요?
당신이 품은 <시간>에 대한 생각?
나를 즐겁게 하는 콘텐츠가 있나요?
무척 좋아서 소문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나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한 주제가 있나요?
|
|
|
지난 호 뉴스레터는 여기서, 지지난호 뉴스레터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블로그의 글들이 뉴스레터에 등장하곤 합니다. 시간 나면 블로그에도 놀러 오세요. |
|
|
143명의 구독자와 함께하는 중입니다.
⦧homeandnest⦦
제안 문의 협업은 아래 메일로
seedsofthought.biz@gmail.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