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엄청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애들이 크고 애들도 애들의 시간이 많아질 때? 완전히 독립할 순 없겠지만, 애들도 애들의 시간이 더 많아질 때가 오겠지. 그때를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는 (웃음). 아 근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가 진짜 올까? 오래 남았다는 뜻도 있는데, 내가 과연 애들한테서 완전히 분리되는 날이 올까 그런 의미야. 분리되지 못할 거 같다는 느낌이지. 내가 지금 내 엄마랑도 이렇게 도움도 받고 엄마가 필요한데… 완전 아이가 없는 사람이랑은 다르다는 생각. 지금과 비교하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시간이 늘어나긴 할거야. 그런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야지.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서,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에피소드 같은 거 있을까? 없으면 얘기 안 해도 되는데 물어보는 이유는, 결혼과 육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잖아. 이게 갑자기 탁 벽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 같거든.
2019년 4월쯤인가 오빠 지인 중에 스타트업 대표인 사람이 있는데 같이 하는 스타트업 중에서, 정직원을 구한다는 거야. 이 회사가 내가 연결된 회사 세 개 중에 번역회사야. 그 회사에서 혹시 일본어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오빠가 내 얘기를 했더라고. 거기다가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나온 거야.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봤지. 결과적으로는 재택근무를 원하는 게 아니었어. 말이 와전됐어. 처음에는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상황이 변해서 재택근무 말고 출근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결국 정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로만 일하게 됐지. 그때 내가 되게 속상했던 거 같아. 일을…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에 엄청 신이 났나 봐. 엄청 신났었는데 실제로 가서 '상황이 이렇게 돼서 출근이 필요하다 혹시 출근은 안되냐, 그게 아니면 저희도 정직원 채용은 어렵다'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 집에서 좀 많이 울었던 거 같아. 그러고 우울증이 왔던 거 같아. 첫째랑도 되게 힘들었거든. 그때 딱 그러고서 애가 되게 아팠었어.
이런 고민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신지.
들어. 근데 이걸 나 혼자서 생각 했을 때 어리다는 느낌은 안 들어. 그치만 이런 고민을 남들에게 얘기하기에는, 언니들은 너무 언니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내 친구들은 이런 얘기는 할 수 없단 말이지. (너의 이런 고민을 흡수하질 못하니까) 그렇지. 나도 내 친구들이 일적인 얘기를, 취준하는 얘기를 온전히 이해를 못하듯이. '아 맞아, 맞아, 맞아.' 이렇게 공감을 못하듯이 내 친구들도 나의 얘기에 그런 거를 못하고. 오히려 언니들이나 엄마, 이모랑 얘기를 할게 더 많다 보니까 내가 진짜 어리긴 하구나 이렇게 느껴져. 되게 정말… 근거 없이 자신감에 넘쳤던 거 같아. 내가.
결혼하기 전에?
어. 경험하기 전에.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근거 없이, 다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잘해봐야지!”, “잘 할 수 있어”, 이런 거였는지 확신은 못 해도, “잘 할 수 있어~” 이렇게 그냥 했던 거 같아. 일도 육아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아이를 미루지 않았던 것 같고.
후회하나요.
후회하진 않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 내가 지금 당장 남들보다 시간이 없고 지금 당장 내가 내 자아를 실현하고 이런 건 못하지만, 그게 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시기가…있겠지. 올 거고.
결혼을 늦게 했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원래 빨리하고 싶긴 했어. 당시에 오빠도 나랑 생각이 맞았던 거지? 근데 우리 둘이 학생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하고 싶으면 해라!” 그래가지고… 이렇게 됐어. 어쨌든 우리가 아니라 부모님이 만들어준 거지. 상황 뒷받침은 부모님이, 너네가 너네 힘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알겠다. 그 상황을 우리가 만들어줄 테니 하고 싶으면 해라. 나는 엄마 아빠가 일찍 결혼을 해서 일찍 하는 걸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 엄마도 젊고, 아빠도 젊고 또 엄마가 엄마 친구보다 훨씬 애들이 빨리 커서 엄마 시간이 빨리 생겼다고 생각했거든.
그때는 결혼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구나.
어. 하고싶다. 해도 되겠다. 철이 없었던 거지. (그리고 그때는 나의 자아실현도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렇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어차피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언젠간 겪어야 하는 일인데, 지금 겪는다고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철이 없었던 거지 (웃음). 나의 자아실현에 대해서 남편과 트러블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두 배, 세 배 되는 것도 잘 몰랐던 거지.
다시 돌아가면 결혼 할건지? 조금 미루고 싶다는 생각.
애들이 있어서 애매해. 나는 이 애들을 다시 만나야 되는데, 돌아가도. (돌아가도 만날수 있다고 치면) 똑같은 애들을 만날 수 있는데 다만 내 나이가 조금 뒤에 만날 수 있다고 한다면 미룰 거 같아. 뭔가… 사회생활을 한 번쯤은 해보고, 내가 내 직업을 한번 가져보고, 나서 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랬으면 지금의 결혼은 안 했을 거 같아.
결혼을 안했다면.
결혼을 안했으면, 계속 대학원 시험을 보거나 취직을 했겠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까 현실적으로 남편이랑 상의해야 되지, 그러면 시댁이랑도 얘기를 해야 되지? 엄마 아빠랑만 얘기를 해서 끝내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야. 학비 같은 것 조차도. 아이가 있으니까 더하지. 그럼 아기를 누가 봐줄 것인가, 사람을 쓸 것인가, 이런 것도 정해야 하고. 그럼 그 이후에 일할 때는? 누가 봐주나? 처음에는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현실이 됐고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의 제한이 많이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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