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한 지 한 달 됐다고 했어. 하고 싶어서 퇴사를 했잖아.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오갔던 감정이 궁금해.
무서웠기도 했는데, 시원 섭섭했어. 시원 섭섭했고 그냥 좋은 경험으로 남기자는 마음이 컸어. 그 마음이 시원 섭섭함을 이긴 것 같아. 지금은 너무 후련해 그래서.
어쩌다 퇴사를 하게 됐어?
이유가 너무 많아. 일단 첫 번째, 선배를 보고 내가 10년 뒤에 저렇게 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아찔했어. 두 번째, 돈. 세번째, 공기업이랑 나랑 안 맞아. 이거는 취업 준비 중인 사람이 들으면 배가 불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성과를 중시하는 일을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안 알아주고 연봉으로 나타나지도 않았어. 그게 나한테 안 맞았던 거지.
“10년 뒤에 저렇게 살고 있겠다”라는 건 어떤 의미야?
‘저렇게’에 여러 가지가 담겨 있긴 한데, 결정적으로 돈에 너무 치여서 사는 거야. 아끼는 걸 꼭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돈에 치여서 산다고 말해야 할 만큼 돈을 생각하고 살아야 해. 연봉이 적어서 선배들 중에 애는 키워야 되고 서울엔 살아야 하니까 저녁에 대리 기사를 하거나 쉬는 날에 배민 커넥트를 하는 식으로 투잡을 하는 경우도 있어. 지금 우리 연봉으로는 사실상 투잡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전에 어떤 선배가 나의 씀씀이 대해 뭐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무슨 명품을 산 것도 아니고… 사 본 적도 없어. 내 예산 안에서 내가 쓰고 싶은 데에 쓴 건데 그걸 가지고 계속 그렇게 살다간 파산한다고 하는 거야. 여기서 몇 년 일하다 보면 네 씀씀이도 정해질 거야… 그 소릴 듣곤 아 이건 진짜 아니다. 도망가야겠다.
아까 말한 두 번째 이유와 연관이 있네.
좀 그렇지.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있어야 되는데, 여긴 연봉이 안 올라. 그래서 열심히 해도 여러모로 의미가 없어.
세 번째 이유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어. 성과를 인정받고 싶은 거야?
응.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퇴사 직전에 회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어. 그런데 그걸 치하해 주지를 않더라. 내 딴엔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게 연봉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아무래도 민원에 민감하다 보니까 나는 규정대로 한 것 뿐인데도 민원이 들어오면 내 잘못이 되는 거야. xx년이니 뭐니 하면서 때리려는 제스처를 해도, 그걸 내가 최전선에서 처리해야 하는데도, 정작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말하다 보니까, 성장에 한계를 느껴서 퇴사를 한 거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맞는 표현인거 같아. 다른 곳에서 또 성장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지. 느끼면 이직할 거 같아. 더 높은 데로 올라가기 위해서? 근데 그 높은 곳의 정상이 어딘지는 모르겠어. (웃음)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사는 거 같아.
퇴사하기 전에 일에서 의미를 찾았다고 할 만한 경험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일에 의미를 찾는 거…감사합니다, 라는 말 들을 때? 고맙습니다? 덕분에? 그런 얘기 들을 때.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할 거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 근데 기준은 있어. 현장에 있어야 되고, 사람들이랑 커뮤니케이션해야 되고, 그걸로 인해서 뭔가 성과가 이루어져서 내가 인정받아야 돼. 하루 종일 컴퓨터만 쳐다보고 일하는 거는 못할 거 같아.
네가 해온 것들이 쌓여서 이 기준이 만들어진 거 같은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기준을 정했는지 궁금해.
베트남에서 여행사 인턴을 하고 나서 ‘내가 사무직이랑 좀 안 맞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 내가 맡은 업무가 한국인 고객의 비행기 표 예약, 골프예약, 투어 예약, 이런 거였는데 고객이랑 카톡으로 상담을 하니까 한계가 있었거든. 그래서 전화를 되게 많이 했어. 전화하는 게 더 편한 거야. 전화하는 거보다 만나서 얘기하는 게 더 편하더라고. 그래서 그때 느꼈어. 사무직이랑 안 맞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현장에 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지 뭔가 좀 더 잘하겠구나. 그러다가 가이드를 한번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밖에 나가니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야.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
나중에 들어보니까 나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대. 한국인인 줄 몰랐대! 베트남 아가씨가 한국어 되게 잘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어.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도 실은 너무 좋았어. 이상한 일도 많았지만 좋은 일들이 훨씬 많았거든? 내가 오히려 감동받는 일도 있었고. 사람들을 하도 많이 만나다 보니까 느끼는 점들도 많았었고 되게 좋았거든. 좋았는데 단지 회사랑 나랑 안 맞았던 거지.
그럼 회사랑 너랑 맞았으면 더 오래 했었을 수도 있었어?
근데 애초에 일을 시작할 때 별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 뉴스에 나오니까 알 수밖에 없고… 어. 근데 했을 거 같아. 회사가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존재감을 인정해 주고, 일에 대해서 성과를 가지고 얘기를 했었으면 계속 있었을 거 같아. 내가 의견을 냄으로써 뭔가 변화가 있고, 그랬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