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가에 갔을 때, 'the game of things'라는 게임을 했습니다. 질문 리스트가 있고 라운드마다 주어진 질문에 각자 답을 적어요. 누가 적었는지 밝히지 않은 채로 답변들을 공개합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누가 어떤 답을 썼는지 맞히는 게임이에요. "things you will never find(당신이 절대 찾을 수 없는 것)"라는 질문에 12살짜리 조카의 답은 "satisfaction(만족)"이었습니다.
위 영상은 7년 전 엘런 쇼에서 짧게 진행한 마일리 사이러스, 스눕 독, 마샤 스튜어트의 the game of things 장면. 영상에서는 답변을 미리 쓰고 호스트가 맞히는 형식으로 구성하였네요.
만족. 내 마음에 딱 맞는 만족이라는 걸 평생 찾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만족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 정말. 만족을 찾으려 한다면 만족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답변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우리가 '괜찮다' 생각하는 지점이 제일 괜찮을 때가 아닐까 싶었고, 그 괜찮음을 감각하는 상태야말로 가장 안정적인 상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무엇보다 그걸 감각해내는 게 중요하겠죠. 그래서 괜찮음을 감각하는 것에 대한 짧은 메시지들을 모았습니다.
그럼 11월에도 사유합시다.
2024-11-15
추신.
피드백 읽다 보니 시즌 1처럼 휘리릭 읽을 수 있는 레터도 원하시는 것 같아서 이번 호는 가볍게 갑니다.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근데 있잖아 할머니, 나 그렇게 살고 있었더라. 나는 내가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어. 내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괜찮은 순간들이 항상 있었어.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나 봐. 할머니."
﹆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 16화에서 주인공 연수(김다미)가 "내 걱정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나게 살라는" 할머니가 했던 말에 답하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합니다.
⎯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게 나 하나였다는 말에 따끔했답니다. 실은 다들 꽤 괜찮게 살고 있는데 말이죠. 무엇이 나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냐, 그건 아무리 뭔가를 하고 있어도 괜찮지 않아 하는 나일지도. 물론 외부의 여러 말과 상황 때문일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면 그들의 영향을 튕겨낼 수 있도록 단단해질 필요도 있을 거예요.
﹆ 노도현 감독의 단편 영화 <스타렉스>. 두 주인공(김해나, 하시연)은 잘못 탄/태운 스타렉스 옆에서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너무 잘해서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 아는 사람이 보면 괜찮지 않은’ 연기를 시작하고 대본에 쓰인 "성희야, 나 생각보다 괜찮아."를 끊임없이 외친다.
⎯ 주인공들은 연기라는 꿈이 있었지만 각자의 이유로 그 꿈과 멀어져 있습니다. 두 인물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도중에 도로 한복판에서 탑승 착오(?)로 처음 만나게 되고, 갖고 있던 대본의 대사를 연기해 보기로 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도로를 뛰며, "나 생각보다 괜찮아." 몇 번씩이나 반복되는 대사를 들으며 나 생각보다 괜찮아를 나도 모르게 함께 읊는 순간, 진짜 생각보다 괜찮아지더군요.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 중 전소정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싱코피>에 등장한 문장입니다. 제가 이렇게(↓) 기록했었네요.
⎯ 이 작품은 유목민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삶에서 교차하는 시간들을 소리의 궤적에 따라 조명합니다. 전시 해설을 들어보면 작가는 작품 전반적으로 감각을 가시화함으로써 그 감각에 녹여진 기억을 소환해 내고자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결국 무언가를 감지하고 감각한다는 것은 거기에 연결된 감정과 기억을 알아차리는 것일 테죠.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괜찮음일까요? 괜찮지 않음일까요? 혹은 그 어디쯤인 걸까요? 만약 괜찮음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무엇을 통해 이 '괜찮음'이란 걸 느끼게 되는 걸까요?
위 영상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한 큐레이터 전시 투어 영상입니다. 8:45-14:49 구간에서 전소정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