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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푸시 알림이 떴다.
거짓말. 내 글을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기다리고 있느냐는 말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도 거짓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텍스트는 참 재미있는 매체다.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어서 가치 있는 건데 모순되게도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절하된다.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뛰어남’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여타의 창작물보다 특출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때때로 괴로워진다. (문자를 독점하고 싶었던 중세 권력층의 이기적인 욕망을 이해해 버린 나….)
고통스러운 것은, 이걸 생각하다 보면 나의 가치 또한 절하되므로. 스스로 내 가치를 깎아내리게 되므로. 나는 잘하나? 못하나? 계속해야 하나? 계속하면 안 되나?
타인의 평가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어차피 내가 해온 것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걸 알고 믿는 게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걸 알면 뭐 하나. 아는 것과 뼛속 깊이 체화되는 것은 다르고, 난 여전히, 하루 종일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에 잠겨 있다가 잠들기 직전까지도 적막과 어둠에서 자라는 생각들에게 기어이 주도권을 내주는 인간 나부랭이일 뿐이다.
종종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쓴다고 말한다. 그 또한 거짓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가뿐히 포기해 버리는 많은 것 가운데 글쓰기는 없다. 그러나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계속 써진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써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존재를 알기에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되새기는 것뿐이다. 적어도,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내 글이 그의 마음에 남았으니,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면 아무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진다.
하지만 왜?
그 의미를 남기는 게, 그거야말로 도대체 무슨 의미인데? 나는 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어쩌다 내가 했다는 이유로, 의미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여가며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그러니까 타인을 위해서 쓴다는 말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의미 있게 되기 위해서 그 사람이 필요했던 거 아니야?
나는 그 사람이 있음으로써 ‘나’라는 사람이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들의 존재에 기대어 나라는 사람에 붙은 ‘쓰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지키고 싶었던 거다. 정말 우습지. 다 ‘나’ 때문이면서.
차라리 듣지 말았으면 좋았을까. 힘이 되었다는 말을. 내 책의 문장이 필요했다는 말을. 내 생각이 좋다는 말을. 계속 써달라는 말을. 팬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말을 썼을 뿐인데 되레 돌아온 감사하다는 말을. 앞으로도 기다린다는 말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을. 공감이 갔다는 말을, 담백하고 재치 있다는 말을, 기획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 좋은 기회였던 청탁 원고, 적고 작아도 많고 크게 와닿았던 것들.
칭찬과 성취를 맛본 나는 슈가하이에 들뜬 어린아이처럼 온종일 다디단 희망들을 생각했다. 잊히지도 않고 끊을 수도 없는 그 달콤한 희망에 빠져 오늘도 나는 기어코 쓰고 만다. 퇴고는커녕 다시 읽어볼 생각도 없는 글을. 신변잡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혼잣말을. 혼자 쓰지 않고 다 보라고 써낸다. 혓바닥에 남은 단맛을 치아로 긁으며 되새김질한다. 예로부터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참 달고, 도저히 질리지가 않지.
하여간. 죽을 때까지 그 희망들이 내 발목을 잡을 테고 난 그 붙잡힌 발목을 열렬히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