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이라는 신간을 조금 읽었다. 교도소에서 일한 시인의 산문으로, “시를 버리고 가장 어둡고 낯선 곳으로 향했지만 그곳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시적인 공간이었다.”라는 띠지 뒷면의 문장을 지나칠 수 없었다.
작가는 시로 등단 후 시인이 되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직전 등록금을 환불받고 교정직 공무원이 되기로 한다. 시를 향한 사랑과는 별개로 ‘시인-되기’에 염증과 환멸을 느꼈다.
그의 이름 석자를 검색하니 신간 홍보를 겸한 기사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그러나 어떤 수형자들은 정말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나간다. 그는 출소한 한 수형자에게 받은 편지 를 떠올렸다. "제 경험상 교정 교화는 무척이나 이상적 단어라고 느꼈지만, 교도관의 친절함은 휴대폰 플래시 같은 것이었어요."
☼
그가 생각하기에 수형자들을 바꾸는 건,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다.
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람’의 기본형은 바뀌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본형은 원래의 것을 관성적으로 수행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쉽게 뱉는 말도 "나 원래 그래."따위의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두면'.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을 바뀌게 하는 '존재'는 반드시 있는 것 같다. 그런 존재를 만나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작가는 그런 존재를 '믿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그러하다.
나도 그저 이 명제를 믿어주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 기원석 | 달 출판사
↪️
(65쪽)
그러나 가끔 어떤 교도관은 그들의 내면에서 변화의 씨앗을 '발명'해내기도 한다. 실낱같은 의지와 에너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마음에 불씨를 지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변화를 부정할지라도 진심으로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애쓰는 자신,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그를 진지하게 믿고 응원하는 조력자, 둘만이라도 서로를 믿고 나아가면 혼자일 때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137쪽)
"제 경험상 교정 교화는 무척이나 이상적 단어라고 느 꼈지만, 교도관의 친절함은 휴대폰 후레쉬 같은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을 만난 건 제겐 행운이었고 선생님들의 친절함은 행복이었어요. 선생님의 직업 선택의 이유를 전 알지 못하지만, 단 한 명의 인생에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으셨다면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교정과 교화란 그저 수형자들이 '다음에는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함께 궁리해보는 일이었다.
☀︎ CURATION: 우리는 끝내 나를 믿어줄 사람 하나가 필요하다
☀︎ ☀︎ 은중과 상연
은중과 상연 | 넷플릭스
☼
“끝내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 정말 미치겠습니다! <은중과 상연> 너무 좋아요! 저는 이 드라마가 여러모로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을 저버리기도 하고, 믿음을 바라기도 하고, 믿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알아서 믿는 것들도 있죠. 그리고 어쩌면,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어야만. 믿기로 해야만, 진실되기 시작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주처럼 끈질기게 상연을 따라다녔던, 은중이 뱉은 그 말. "누가 너를 끝내 받아주겠니?"그리고 은중은 그 말을 책임지기라도 하듯 상연을 끝내 받아준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연은 그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도 바로볼 수 없는 나를,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나를, 그 자체로 온전히 믿어줄 한 사람 필요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